경복궁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 및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종묘는 태조 3년 (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1395) 9월에 완공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 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고,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으며, 정전 뜰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문화유산 등재 시기: 1995년 12월
문화유산 등재 이유: 1. 제왕을 기리는 유교 사당의 표본으로서 16세기 아래로 원형이 보존되고 있다.
2.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건축양식이다.
3. 종묘에서는 의례와 음악과 무용이 잘 조화된 전통의식과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사, 社)과 곡식의 신(직, 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가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조성할 때 함께 조성되었는데, 임금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고대 중국의 배치 원리에 따라 경복궁 서쪽에 세웠다.
제사를 지내는 단은 두 개가 배치되어 있는데 동쪽에 있는 단(국사단(國社壇))이 토지의 신에게, 서쪽에 있는 단(국직단(國稷壇)이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신좌를 북쪽에 모셨다.
종묘와 더불어 조선왕조의 근간이 되었던 곳으로, 나라에 큰일이 있거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풍년을 비는 기곡제 등의 제사도 행해졌다.
종묘제례 및 제례악은 2001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으로 등재, 2008년부터는 인류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관리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개최되는 행사로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문화유산이다. 종묘제례는 왕조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로 조선왕조의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 비롯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를 이어 내려온 소중한 조상전래의 제례의식이다. 조선조에는 춘하추동 사계절과 섣달에 행하였으며 1969년 대동종약원에 의해 복원되어 지금은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과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봉행되고 있다.
종묘대제에는 종묘제례가 봉행되며 각 제사 의례에 맞추어 경건한 분위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음악과 무용으로서 종묘제례악이 따른다. 제례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 초헌, 아헌, 종헌례에 이어 음복례가 행해지고, 신을 보내 드리는 송신례(送神禮)를 갖춘 후에 축(祝)과 폐(幣)를 망료(望燎) 위에 불사르는 것으로 끝난다. 종묘제례악은 우리 고유의 음률로 왕조의 창업과 기상을 노래하고 있으며 모든 행사의 순서에 맞추어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엄숙한 제사 의례만큼이나 장엄미가 돋보이는 종합예술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크며 동양에서도 드물게 남아 있는 고전음악이다.
정전 국보 제227호
종묘의 주전이다. 총 19실에 19명의 왕과 30명의 왕비 신주를 모셔두고 있다. 건평이 1270㎡로서 동시대의 단일 목조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정면에서 보면 동서 약 110m, 남북 약 70m나 되는 월대가 넓게 펼쳐져 있고,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신도가 나 있다. 정전에 모실 신주가 늘어나면서 건물도 여러 차례 옆으로 증축해 길게 늘인 게 특징이다. 이처럼 정면이 길고 수평성이 강조된 건물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건축양식이다.
영녕전 보물 제821호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게 되자 세종 3년에 별묘로 세웠다. 정전에서 조천 된 태조의 4대조, 11명의 왕과 17명의 왕비, 그리고 영천 왕과 황후의 신주를 모셨다. 각 신실의 구성은 정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전체적인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으며, 중앙의 태실을 높게 꾸며 장대함이 조금 덜하다. 세종 때 태실 4실, 동. 서 익실 1실씩 두어 총 6칸 건물로 지었고, 이후 계속 증축해 현재 16실이다.
망묘루 왕이 제사를 지내러 올 때 머물면서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현재는 종묘사 무소로 사용 중이다.
공민왕 신당 망묘루 동쪽에 위치한 별당, 종묘를 창건할 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고려 제31대 임금인 공민왕을 위한 사당이다.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영정과 준마도가 봉인되어 있다 신당의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이다.
향대청 향대청은 종묘제례에 사용하는 향, 축문, 예물을 보관하고, 제례를 올릴 현관들이 대기하던 장소다. 남북으로 난 긴 뜰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현재는 종묘와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된 제1전시실과 정전 산실 내부 및 제사의 내용을 배울 수 있는 제2전시실로 꾸며져 사용된다.
재궁 왕과 왕세자가 머물며 종묘제례를 준비하던 장소, 어숙실 또는 어재실이라고도 한다. 중앙의 건물이 왕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 건물이 왕세자가 거처하는 세자 재실이다. 서쪽에는 왕이 목욕재계하던 어목욕청이 있다.
공신당 조선시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공신들의 신주를 모신 곳. 태조의 공신을 비롯해 제27대 순종까지 정전에 모신 역대 왕의 공신의 신주 80위를 배향하고 있다. 정전 남문을 중심으로 우측에 있다. 종묘 정전 중축과 함께 동쪽으로 옮겨 증축되면서 지금의 16칸 건물이 되었다.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정전과 한울타리 안에 있어 형식이 매우 간소하다.
종묘제례 중요 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에서 왕이 제사를 드리는 것이 종묘제례다. 조선시대에는 정전에서 매년 춘하추동과 섣달에 대향을 지냈고, 영녕전에서는 매년 춘추와 섣달에 제향 일을 따로 정해 제례를 지냈다. 1462년에 정형화된 형태가 500년 이상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내려오는 동아시아 유일의 왕실 제례의식이다. 종묘제례의 특징은 제사임에도 음악과 춤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학의 예약 사상에 따른 것이다.
종묘제례악 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에 사용되는 음악과 무용, 종묘악이라고 한다. 종묘제례의식의 각 절차마다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의 종묘 악장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종묘제례악은 세종 29년 궁중 화례연에 사용하기 위해 창작한 것이나 세조 10년 제사에 적합하게 고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종묘대제가 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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